오늘의 역사 돌아온 숭례문(05.04)

2020. 5. 5. 00:25History of today

 지인분들 중에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의 철학은 1일 1포스팅입니다. 그리고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새벽까지 회식을 하는 날에도 꾸준하게 하루도 빠짐없이 운영 중입니다. 저는 얼마 전 블로그를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제 주력인 개발 내용을 다루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개발 내용은 생각보다 더 다뤄야 할 것들이 많고 포스팅을 작성하다 보면 제 자신도 모르는 내용이 나와서 아직 공부를 더 해야 하는구나 하고 포스팅을 미루게 됩니다. '꾸준하게 무언가를 하자'라는 것은 다른 어떤 이유보다 제 자신의 마인드 업에 가장 좋은 활동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그 날짜에 있던 역사를 다루려고 합니다.
 저는 사포자(사회 포기 한 인간)로서 역사를 아니 간단한 이야기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요즘 다 방면으로 많은 노력을 하면서 살고 있는데, 블로그에서만큼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도 뒤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이 글은 정확하지 않은 내용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잘못 표시된 내용이나 개선돼야 할 내용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숭례문(aka. 남대문)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숭례문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정문으로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5년(1396)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 이 건물은 세종 30년(1448)에 고쳐 지은 것인데 1961∼1963년 해체·수리 때 성종 10년(1479)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2008년 2월 10일 숭례문 방화 화재로 누각 2층 지붕이 붕괴되고 1층 지붕도 일부 소실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으며, 5년 2개월에 걸친 복원공사 끝에 2013년 5월 4일 준공되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이 문은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붕을 우진각지붕이라 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그 형태가 곡이 심하지 않고 짜임도 건실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봉유설』의 기록에는 ‘숭례문’이라고 쓴 현판을 양녕대군이 썼다고 한다. 지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서울 성곽 중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ㅇ 숭례문 방화 화재(2008.2.10)

- 2008년 숭례문 방화 사건(崇禮門放火事件)은 2008년 2월 10일 ~ 2월 11일 숭례문 건물이 방화로 타 무너진 사건이다. 화재는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40분 전후에 발생하여 다음날인 2008년 2월 11일 오전 0시 40분경 숭례문의 누각 2층 지붕이 붕괴하였고 이어 1층에도 불이 붙어 화재 5시간 만인 오전 1시 55분쯤 석축을 제외한 건물이 훼손되었다. 

 

명칭의 유래

 숭례문

  4대문과 보신각은 오행사상을 따라 지어졌고 인(仁: 동), 의(義: 서), 례(禮: 남), 지(智: 북), 신(信: 중앙)의 5 덕(五德) 중 '례'를 의미한다.

 

 남대문

  한양도성의 정문으로 남쪽에 있어 남대문이라고 불려졌다.(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명명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잘못된 내용)

 

숭례문 현판

 숭례문의 편액(현판)은 "지봉유설"에 따르면 양녕대군(조선시대 초기의 왕세자)이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008년 2월 10일 숭례문 화재로 인해 편액의 손실을 우려해 숭례문으로부터 분리하는 과정에서 현판이 추락하여 그 충격으로 일부 목재 편에 탈락, 결실 및 부분 균열이 발생되었다. 또한 현판의 테두리목도 여러 조각으로 파손되고 일부 결실된 상태이다. 그러나 해당 결실 편을 현장에서 95% 정도 확보함에 따라 원형 보존처리에는 이상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숭례문 현판의 경우 남쪽에 있는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불로 다스리기 위해 다른 문과 다르게 세로로 쓰도록 했다. 숭(崇)자는 불꽃이 위로 타오르는 듯한 모양이고, 례(禮)자는 오행으로 화(火)이며 방위로는 남쪽을 가리킨다. 가로로 하면 불이 잘 타지 않기에 세로로 세워 불이 잘 타도록 비보(裨補)를 쓴 것이다.

 

국보 1호

 발단

 숭례문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통과하여 철수한 문으로 지적되어 일제강점기 때 보존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1934년 조선총독부는 보물 1호에 남대문을, 보물 2호에 동대문을 각각 지정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남대문과 동대문은 각각 국보 1호와 보물 1호로 지정되었다.

 

 조치

 1996년 11월, 국보 1호 변경 주장이 이슈가 되어, 문화재관리국이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서울대가 자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였다. 서울시민 1,000명 중 67.6%가 변경에 반대했다.

 

변경 반대론

  • 국보 제1호의 번호는 문화재의 가치 순서가 아닌 단순한 관리번호이다.
  • 문화재의 가치에 우열을 매긴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 교체 시에는 국내외의 각종 문헌자료를 수정해야 하는 등 혼란을 초래한다.

변경 찬성론

  • 남대문은 국보로서 대표성이 없다.
  •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부족하다.
  • 일본제국이 일방적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복원  중건

 2008년 2월 10일 숭례문에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고 이 화재로 숭례문은 88% 이상 소실됐다. 그래서 국보 해제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으나 문화재청은 국보 1호 유지를 결정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당시 문화재위원회에서 2층은 불에 탔지만 1층은 상당 부분이 원형대로 남아있고 성벽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므로 화재가 났다고 해서 국보 지위를 유지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라고 밝혔다. 또한 2013년 5월 4일 중건된 숭례문이 공식적으로 국민에게 다시 돌아왔다.

 

 

 

 

 생각정리

 예전에 유럽 배낭여행을 할 때 본 일부 유럽 건축물들은 소실된 모습의 그대로 또는 소실된 부분을 다른 재질로 하여 복구된 부분을 알 수 있는 건축물들이 많았습니다. 그때 숭례문이 부실 복구로 많은 논란이 있었고, 다른 것도 아니고 국보를 중건하는 데 있어서 악행으로 돈을 빼돌리는 이슈까지 있는 걸 보면서 차라리 중건되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남았다면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불타버린 숭례문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로 또 다른 인상으로 메시지를 남겨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저도 약소국으로서 우리 문화재가 많이 소실되고 빼앗겨버린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 아픈 모습(복구되지 않은 화재 이후 숭례문)의 숭례문은 후세에 더 문화재에 대해 역사의식을 갖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ference 

국보 제1호 서울 숭례문 (서울 崇禮門) : 국가문화유산포털 - 문화재청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정문으로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5년(1396)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

www.heritag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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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숭례문 (남대문) – 국보 제1호 – 옐로우의 블로그

※ 황성열의 세계 – 문화재 : http://yellow.kr/nt.jsp ※ 국보 제1호 / 서울 숭례문 (서울 崇禮門) / 1962년 12월 20일 지정 / 서울 중구  세종대로 40 조선시대 작품이다. 문화재청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서울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으로 원래 이름은 숭례문이며,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4년(1395)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yellow.kr

 

숭례문 - 나무위키

600년 동안 한양을 둘러싸고 있었던 한양도성의 남쪽에 위치한 문. 대한민국 국보 1호. 현재도 서울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의 상징이나 다름 없는 건축물이다.[4] 도시 남문의 이름에 '남' 자가 안 들어가서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인의예지를 동서남북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서울의 정문들 이름이 붙여졌다. 유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덕목인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을 기준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남: 예(禮)를 숭상하는 숭례문북

namu.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