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 제2 연평해전 06.29

2020. 6. 29. 22:30History of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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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제2연평해전#/media/파일:PKM_357_at_the_War_Memorial_of_Korea,_23_March_2011.jpg

 

 제2 연평해전

 제2연평해전(第二延坪海戰)은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 부근 해상에서 일어난 남북한 간의 군사적 충돌이다. 대한민국 해군 고속정에 대한 북한 해군 경비정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되어 30분 가량 진행된 이 전투에서 양측 모두 손상을 입었다. 북한군의 선제공격을 당한 대한민국 해군의 참수리 357호는 교전 후 예인도중 침몰하였고, 정장(참수리급은 150톤급으로 "함"이 아닌"정" 지휘관도 "함장"이 아닌 "정장")을 포함한 승무원 6명이 전사당하고 19명이 부상당하는 인명피해를 겪었다. 조선인민군 해군소속 등산곶 684호도 대한민국 해군의 반격으로 전투 후 상당한 피해를 입고 예인 당했다. 제2 연평해전으로 조선인민군 해군 13명이 전사하고, 25명이 부상당했다.

 

 

개요

 제1연평해전으로부터 3년 후인 2002년 6월 29일은 한일월드컵이 막바지에 이른 시기였다. 이날 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 이남지역에서 북한의 무력 기습도발로 남북 간 충돌이 일어났다.  

 

교전수칙에 따라 차단기동으로 대응하던 대한민국 해군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를 향한 북괴군 등산곶 684호의 지근거리 기습 함포공격으로 시작되어 함포와 기관포를 주고받는 치열한 격전이 된 전투 후 대한민국의 피해는 6명이 전사, 19명이 부상하고, 전투 종료 후 복귀 도중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가 침몰하였다.

 

한편 북괴의 피해는 약 3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SO-1급 초계정 등산곶 684호가 반파된 채로 예인 되어 퇴각하였다. 집중 포격을 당한 참수리 고속정 357호 정장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 1계급 추서)이 그 자리에서 중상을 입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사하고, 부정장 이희완 소령(당시 중위)이 쓰러진 정장을 대신하여 지휘권을 행사했는데 이희완 소령은 총상으로 한쪽 종아리의 근육을 잃은 상황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휘하였다.

 

사건이 발생하자 군 당국은 전군에 경계 강화령을 내리고 서산 상공에서 초계비행하던 KF-16 전투기 1개 편대를 NLL 인근 해상으로 긴급 파견해 확전에 대비했다. 청와대 또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하는 등 비상태세에 들어갔으며, 김대중 대통령은 NSC에서 "북한 경비정이 선제 기습사격을 가하는 등 무력도발 행위를 자행한 것은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며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로 묵과할 수 없다"라며 "이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군 당국이 더욱 철저한 대비태세를 갖춰 달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6월 29일 저녁 국무위원들과 함께 청와대 본관에서 한국과 터키의 월드컵 3ㆍ4위전 경기를 시청하려던 계획을 취소했으며, 월드컵 폐막식 참석을 위해 30일 일본을 방문하는 일정도 다시 검토됐으나 일정 취소가 국민 불안감을 높이고 외국 투자자들의 우려를 촉발시킬 수 있다고 판단해 그대로 진행시키기로 했다. 그리하여 김대통령은 공동 개최국 대표로서 2002년 FIFA 월드컵 결승전 경기에 참석하고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지러 6월 30일 오전 일본으로 출국하였다.

 

2007년 6월 28일 참수리 고속정을 대체한 차기고속함 1번 함이 윤영하함으로 명명되어 진수되었으며, 2009년 6월 2일 실전배치되었다. 2009년 9월 23일 STX조선해양에서 2번함이 한상국함으로, 3번함이 조천형함으로 각각 진수되었다.

2009년 12월 11일 한상국함과 조천형함에 이어 STX조선해양에서 4번 함인 황도현함, 5번 함인 서후원함이 각각 진수되었다. 

2010년 7월 28일 한진중공업에서 6번함인 박동혁함이 진수되었다.

 

결과

 대한민국 해군 소속 참수리 357호 교전이후 심한 선체 손상으로 예인을 포기, 침몰했으며 침몰 당시에는 탑승한 승무원 30명 중 4명이 전사, 1명이 실종되고 20명이 부상하였으나 이후 치료를 받던 박동혁 병장(당시 상병)이 국군 수도병원에서 전사했으며 실종되었던 한상국 중사(당시 하사)가 침몰 41일째 날 조타실에서 발견되었고, 53일 만인 8월 21일, 침몰된 배가 인양되고 수습되어 결과적으로 총 6명 전사 19명 부상하였다. 대한민국 군당국은 북한 경비정이 30명 정도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추정하였다.

 

 

 

 

제2연평해전은 일반 사람들에게 연평해전이라는 영화로 많이 알려진 사건입니다. 저에게는 이 사건이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제2함대에서 2012년도부터 약 2년간 복무를 한 해군 장병이기 때문입니다. 근무를 하러 나가는 길에는 357 함정이 있었고 돌아오는 길에 천안함이 있었습니다. 아시나요? 이 날 우리나라는 월드컵 열기에 전국을 뜨겁게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였던 저는 밖에서 박자에 맞춰 대한민국을 표현하는 자동차의 클락션 소리에 소리 지르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가 그렇게 응원할 수 있었던 건 북방한계선을 지키고 있었던 우리나라의 군인이며 또 국민이고, 그 이전에 누군가의 가족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숭고한 군인 분들이나 그 가족분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오늘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냥 6월의 힘든 어느 한 월요일로 마무리되지 않았으면 해서 글을 씁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를 지켜주시던 선배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